은혜의 장소! 2

 Holy Life

22-6.17

본문: 갈라디아서 1:18-24

 

제목: 은혜의 장소! 2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으로 사도바울이 회심 한 후에 방문하였던 나머지 장소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 바울은 세 번째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회심 후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갑니다.

회심하자마자 바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니라 3년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한 후에

간 것입니다.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독적으로 만났기에 누구와도 의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난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누구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은혜요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의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만 옳은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확실하다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 역시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진정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라면 나에게 말씀해 주셨듯이...

베드로에게도 말씀하시고 야고보에게도 말씀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아는 예수, 베드로가 아는 예수를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사도적 전승을 명백히 하려고 했습니다.

나만 옳다고 우기는 개인적인 복음이 아니라 사도적 전승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연결하여 협력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도 옳지만 그들도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협력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야 이 진리의 천국복음을 증거하는데 걸림돌 없이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18절 말씀에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5일 머물렀다고 정확하게 날짜를 세어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19주의 형제 야고보 말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고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여기에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 사도들을 만나서 복음에 대한 것을 듣고

1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이라도 같이 지내며 복음을 함께 토론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베드로와 야고보, 이 두 사람만 만났는데 그것도 단 보름 동안 같이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내가 전하는 복음은 절대로 누구에게서 배우거나 전승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과 직접 3년 동안 동거동락하면서 배운 사도적 전승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온전한 복음임을 말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서로 타협하거나 흥정하여 만들어낸 교리가 아니다...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나는 나대로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직접 들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 은혜를 전하는 복음의 일군으로서 서로 한 뜻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4. 마지막으로 바울은 네 번째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갑니다.

21절에 말씀에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여러분!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를 말합니다.

아라비아에서 다메섹, 그리고 예루살렘을 거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93절에서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인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긴 것이 자기 골육의 친척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고향 사람들부터 먼저 만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여주고 싶지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가장 기쁜 소식이 있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천국복음도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가까운 친구, 가장 가까운 이웃이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그 마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하고 말씀하신 최후의 위임령은 무엇을 뜻합니까?

마치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파문이 중심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듯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점점 더 먼 곳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서

친척, 친구, 가까운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길리기아 지방으로 간 것입니다.

끝으로 22-24절 말씀의 핵심 내용만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여러분!

사람들이 바울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소문이 이미 퍼졌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지금은 전도자가 되었다,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이렇게 바울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져나갔고...

이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갔다...

내 간증, 내 증거, 내 삶의 열매, 나의 믿음의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듣고 있는 여러분에 대한 소문은 어떠한지??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 대한 평판과 소문이 주위로 퍼져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하나님께 욕됨이 돌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에 대한 소문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소문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릴 수 있는 신실한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실한 신앙의 삶을 통해... 언행심사를 통해서...

우리 초대 교회가 좋은 교회로 소문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과 능력이 드러나는...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복음의 문이 더욱 활짝 열려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성령충만하게 준비하며...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나의 언행을 통해, 우리의 삶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를 말씀 안에서 겸손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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