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위한 복음 2

 Holy Life

22-6.21

본문: 갈라디아서 2:1-5

 

제목: 이방인을 위한 복음 2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도바울이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 본문 속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섬기는 문제와 제물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할례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식일 문제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언급되지 않은 문제는 많은데 이 점이 중요합니다.

유대사람으로서는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까?

언급하지 않고 금하지 않았다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는 긍정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이방사람은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

안식일을 구태여 지킬 필요 없고 주일을 지켜도 된다.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 확증으로서 바울은...

3절에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하지 아니하였으니”...

하나의 시험적인 예를 들어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 출신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에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은 원래 이스라엘사람입니다.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과거가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 믿으며 예루살렘을 드나드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도가 문제였습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의 조수로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디도는 헬라사람이므로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디도라고 하는 전도자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똑같이 영접하느냐

아니하느냐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디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영접하면 세계 교회는 하나가 되어 잘 나갈 수 있겠지만 시비가 벌어지면 예루살렘교회도 이방교회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디모데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헬라사람이지만 어머니가 히브리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디도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헬라사람이므로 할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서는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억지로 할례를 베풀지 않았다... 할례 받지 않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디도는 할례 받지 못한 상태로 예루살렘교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염려하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왜 이방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느냐"하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한치도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4-5절 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란 유대주의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멀쩡하게 교회에 들어온 교인이지만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구원의 그 절대적인 은혜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교회에 들어왔습니까?

기독교인들을 혼란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되나, 할례를 받아야지"

"이방사람들이 예수 믿으려면 할례부터 받아야 한다"

여러분! 쉽게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것도 없는데 하고 양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한 번 양보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유대사람들이 그 동안 지켜온 종교적인 문화와 전승에 따른 규례들을 모두 지켜야 된다고 고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도 지켜야 되고 성전에 제사도 드려야 하며 그 엄한 율법을 다 지켜야 됩니다.

또한 스스로의 공로를 세워야 하고 행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 결과,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의 공로와 의로움이 어느새 없어지게 될 것이 때문입니다.

감언이설에 넘어가 조금만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기독교인이 비 기독교인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이러한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항상 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에 한 번도 안 빠지는 사람의 눈에는...

새벽기도에 안 나오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믿어도 될까"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은 나왔다고 의롭게 생각합니다. 교만해집니다.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으면 봉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에 대한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 주신 건강과 재능과 물질로 섬기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봉사 좀 한다고 교만해지고 봉사 안하는 사람을 보면 비난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봉사, 선행을 할 때에 내 의를 생각하고 내가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내 공로요, 내 선행이요, 내 의요...

전형적인 율법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는 자유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사망과 사단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방종은 아닙니다.

여러분! 진정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며 그 은혜가운데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은혜가 율법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인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은혜에 감격하며 사는 동안 오히려 더 선하게, 더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율법으로 되돌리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끝으로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가장 잘 믿는 것처럼,

가장 바른 길을 설명하는 것처럼 행세하며 그리스도인이 가진 그 고귀한 자유를 엿보고 다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노예가 되게 하려 하니 조심하라고...

율법주의자에게 양보하지 말라고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러한 율법주의로 돌아가게 하려는 유혹에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침투해 오는 율법주의를 경계하며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만을 드러낼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신앙생활이 율법주의로 변하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오늘도 빚진 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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