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은혜

 Holy Life

22-6.23

본문: 갈라디아서 2:6-10

 

제목: 내게 주신 은혜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사도바울이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

바르고 균형 있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가운데 십자가의 능력을 확실하게 체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크게 역사하고 있는지?

자신의 눈으로 몸으로 직접 체험했습니다.

불치병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고,

어둠 권세에 눌려 있던 사람들의 영과 육신에서 귀신이 쫓겨 나가고,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하던 강팎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부셔져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역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역사 하는지? 그 복음의 열매를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믿음은 확고부동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보셨습니까?

혹은 누구에게 전도를 해보셨습니까?

복음을 증거할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많은 응답의 열매를...

죽어가는 심령이 회개하고 영접하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사도바울과 같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이러한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바울은 유력한 사람들(사도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같은 점은 역사 하는 분이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 하다"-'에네르게사스''에네르게오' '에네르게이아'라는 말입니다.

'에네르게오'는 영어로 work, 행동한다, 역사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린다' '사역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베드로 안에서 역사하고, 바울 안에서도 역사 합니다.

베드로도 심부름하는 것이요 바울도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둘 다 심부름꾼일 따름입니다.

베드로 안에서 역사 하시는 분이나 바울 안에서 역사 하시는 분이나 역사 하시는 분은 한 분입니다.

그 역사의 주인은 한 분 성령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2. 둘째로,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7)"-복음을 맡았다고 합니다.

베드로에게도 맡기고 나에게도 맡겨졌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긴 분이 한 분입니다.

역사 하는 분도 한 분이요, 일을 맡긴 분도 한 분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많지만 일을 맡기는 분은 한 분입니다.

3. 셋째로, "내게 주신 은혜(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도 한 분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여러 사람이지만 은혜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성도 있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있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인데 그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차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이지만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일을 맡기시는 분은 하나지만 일을 맡은 사람이 각기 다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과 베드로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마음대로 맡기십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흙을 빚어서 귀한 것도 만들고 천한 것도 만듭니다. 만드는 사람 마음 대로입니다.

"나는 왜 밥그릇으로 만들었습니까?" "나는 왜 접시로 만들었습니까?"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주인의 마음대로 주인의 필요에 따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고,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문화가 가미된 헬라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며

베드로는 히브리 문화권에서 성장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릅니다.

여러분도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고향이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자라온 집안 환경이 모두 다릅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가지고 있는 재능과 지식도 모두 다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스타일도 모두 다릅니다.

그렇듯이 사도 바울은 이방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베드로는 유대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르게 지으셨고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위하여 일하고

베드로는 할례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지역이 다릅니다. 문화권이 다르고 종교적 배경이 다릅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같은 것과 다른 것,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죄인이었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같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른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은 같습니다.

믿음의 뿌리는 같다는 말씀입니다.

다 같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다 같이 주의 일꾼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섬기며 살다가 마지막 하늘나라로 가는 신앙의 목적이 같습니다.

그러나 단지 기능의 다양성을 알아야 합니다.

9절 말씀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가 절대로 우월하거나 자랑하고자 하는 의미로 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마다 받은 은혜가 다르고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릅니다.

그러나 모두 소중합니다.

손과 발 중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눈과 코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둘 다 중요합니다.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9절 후반절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인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과 친교의 악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 한 가지, 구제에 대한 부탁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구제사역에 함께 힘써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여러분 이 말씀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흉년이 들어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면에 고린도같은 이방 지역에는 풍년이 들어서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하러 다니는 곳마다 구제금을 모집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서로 보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이런 말까지 합니다.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영생의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았는데 우리가 예루살렘에 식량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입니다.

give and take입니다.

정말 좋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상호 보충의 관계이기에 부탁하는 일이 생기고 부탁받는 일도 생깁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힘이 있는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서로 보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계란 상호 보충하면서 서로 부탁하는 일이 이루어 질 때에 비로소 온전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도...

서로 기도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작은 마음의 정성과 사랑으로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여러분에게 있는 재능과 물질과 그 어떤 것으로 서로 보충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온전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귀한 성도의 교제를 이룰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이러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우리의 이웃과 세상에 드러내며 오직 한 가지 복음을 증거하는 공통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천국복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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