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외식

 Holy Life

22-6.27

본문: 갈라디아서 2:11-13

 

제목: 베드로의 외식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같이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사도행전 24647절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떡을 떼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반드시 떡을 떼었습니다.

"떡을 떼며" 하나의 친교입니다. 식사를 함께 하며 나누는 친교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이라는 예배의식이 아직은 완전히 구체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성찬식 자체가 그대로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친교하면서 나누는 식사가 곧 성찬이었습니다.

성찬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인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함께 식사를 하게 될 때 그 식사를 성찬의 의미로 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찬식이라 해서 따로 준비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626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자연스럽게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

또 잔을 가지시고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성찬식을 행하셨습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친교하는 자리에서 성찬의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33)"-

무슨 의미로 한 말씀입니까?

성찬식을 할 때에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좋으련만 배고픈 사람,

욕심 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뒤에 남은 사람들은 얻어먹을 것이 없어지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어떤 사람은 못 먹어서 허기지고...

오죽 답답했으면 사도 바울의 입으로 그런 충고를 했겠습니까?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34)"...

예배와 성찬의 의미는 간데 없어지고 사람들이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한 단면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성찬을 나누는 친교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귀족과 천민과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서 한 형제요 자매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이 형제 자매된 사랑의 공동체에 제외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강한 선민의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 대하여는 배타적이고 여전히 교만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이웃은 유대사람뿐이었습니다.

이방사람들을 더러운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더러운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사람과는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면서 사업도 함께 하지 않습니다.

여행도 같이 하지 않습니다.

함께 먹지도 않고 함께 잠을 자지도 하지 않습니다.

이방사람에게는 대접하지도 않고 대접받지도 않습니다.

굶어죽어도 이방사람의 집에서는 얻어먹지 말라고까지 말을 합니다.

당연히 이방과는 통혼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배타적이었습니다.

이방사람하고 가까이하는 것은 절대 금기였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어렸을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대사람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습니다.

이방 땅인 안디옥에 왔는데 이방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반갑게 자기를 맞이합니다.

베드로의 방문을 그들이 고맙게 여겼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 역시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들어옵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이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불쑥 나타난 순간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납니다.

음식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유대 사람의 습관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관습이 작용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를 뜨고 맙니다. 그래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여러분!

이방사람은 할례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예루살렘교회에서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할례 없이 예수를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친교해야 되느냐?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할례 안 받고 예수 믿어도 된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라...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러한 사항은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교 방법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급이 되지 않았어도 지혜와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기독교인으로 평등하게 대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할례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해 놓고 이방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큰 실수요 이것이 신앙의 위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면 과거와는 상관없이 그 집에 가서 함께 잠도 자고 먹기도 같이 먹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같은 복음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행동으로는 구별하는 위선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욱 재미있는 사건이 계속 벌어집니다.

위선은 또 다른 위선을 낳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니까 같이 있던 유대사람들이 따라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참 유감스러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13)."

여러분! 바나바는 사도 바울처럼 이방을 위한 전도자입니다.

마음이 좋고 덕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 그 순간에는 지혜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일어서니까 이방의 전도자였던 바나바 역시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나바까지 베드로의 위선에 유혹되어 나가버렸는데 이방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더더욱 상처를 입었겠습니까?

"정말 너무해도 너무하시네 우리하고 한 자리에서 식사하기를 꺼리다니, 당신들은 말끝마다 우리한테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이 무슨 차별을 하냐고?"

정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실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낙심하게 되고 불만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도 바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호되게 책망합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여러분!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베드로대로 유대인의 사도로서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존경을 신앙 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위대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존경하지만 그분이 하는 일이라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존경할 것이 있으면 그 존경하는 마음은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여러분의 신앙의 자세는 분명히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베드로가 오늘 말씀의 상황 속에서는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사람 하나가 끼치는 영향력은 이렇게 큰 것입니다.

그 사람이 특별한 지도자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우리의 모습 또한 살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자녀로서 나는 과연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이 없는지?

나의 신앙생활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명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그리고 사도바울은...

언제나 복음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복음 진리를 따라 행하라...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그 행위가 한결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다르고 사람 앞에 다르면 안 됩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항상 진실성에서 같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행동하다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또는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의 진리대로 믿음을 가지고 한결같은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언행심사를 성령으로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올려드리며 오늘도 하늘의 풍성한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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