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형식!

 Holy Life

22-6.28

본문: 갈라디아서 2:14-17

 

제목: 본질과 형식!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베드로가 이방인들 앞에서 외식하는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의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증거해 왔고...

유대인들의 문화와 신앙의 습관 속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마음의 자세와 삶의 모습으로 다아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자리에 나타나자 그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먼저 한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두 문화권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한 교회이지만...

처해 있는 문화권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 형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유대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고

또 하나는 비 유대사람, 다시 말해서 이방인의 교회입니다.

지역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밖에 있는 교회라고 이방인의 교회이고 예루살렘 안에 있다고

다 유대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우선 예루살렘 안에도 두 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사람들의 교회이고 또 하나는 헬라파 유대사람들의 교회입니다.

헬라파 유대사람들의 교회는 엄격히 말해서 이방적 성격을 띠고 있는 교회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와서 우리 역시 신앙생활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지역특성 때문에 미국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에서 이민생활하면서 이민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예배 스타일이나 분위기 그리고 언어와 문화까지도 분명 한국교회입니다.

한국 문화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안에도 순수한 유대사람의 교회가 있고

소위 헬라파 유대사람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밖에는 각 나라에 흩어져 있었던 이방인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두 교회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유대사람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입니다.

유대사람들의 교회에서는 유대말을 씁니다.

설교도 히브리말로 합니다.

그들 나름의 전승과 문화를 통해서, 그 문화권 안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어져오던 것들을 그대로 다 지키면서 예수를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대로...

이방인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20)"

우상을 섬기는 일에 관한 것만 피하면 문제될 것 없었습니다.

이것을 제외한 모든 것...

즉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굳이 할례 받을 필요 없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던 사람은

그대로 주일을 지키면 된다고 사실상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스타일의 교회가 엄연히 존재했지만

지역이 다르고 따로 떨어져 신앙생활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두 문화권의 교회 사이에 교통이 있게 되니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2장의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만 있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사람의 집에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곧 유대교회가 이방교회에 들어온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결국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생겼습니다.

이방사람의 집에 앉아서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사람들이 나타나자 당황하여 음식먹는 것을 멈추고 일어나니 사실상 모양이 좋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한 형제, 자매라고 떠들어 댔지 실상은 여전히 유대인들의 문화관습대로 이방인들을 모욕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14절에서 말씀과 같이 베드로는 바울에게 강한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오늘날 신앙생활하면서 이러한 외식하는 모습이 없는지?

우리의 과거의 신앙습관이나 문화만을 고집하는 외식하는 모습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신앙관을 정립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실수한 모습 역시 얼마든지 우리의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의 예배와 기도하는 스타일만 보더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유대관습에 젖어 있었던 베드로가 이방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외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드러내는 실수를 범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의 스타일의 차이점을 두고 이러한 실수를 범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드릴 때 시끄럽게 찬양하고 손뼉을 칩니다.

뜨겁게 주여 3창을 하고 큰 소리로 통성 기도합니다.

하지만 어떤 교회는 조용하고 거룩한 분위기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도 조용 조용 소리 내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예배와 기도의 방식이 바른 것입니까?

어떤 예배와 기도는 바르지 않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상 예배와 기도의 스타일이 다를 뿐이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목적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목적이 바뀌면 안 되지만...

사실상 스타일의 문제는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서 신앙생활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같은데 스타일이 다르다는 문제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신학적으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

다를 수 있는 것과 다르면 안 되는 것을 엄격하게 복음 안에서 바르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여러분 모두는 복음의 본질은 조금도 변질시키지 않고...

복음증거를 위해서 복음의 형식은 내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복음증거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스타일, 내 경험을 내려 놓을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선한 복음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와 능력 안에서 오직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오직 천국 복음이 증거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 생각, 내 경험, 내 관습은 내려 놓고 오직 복음의 생명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늘의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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