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약 2

 Holy Life

22-8.01

본문: 갈라디아서 4:21-27

 

제목: 두 언약 2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서...

갈대 같은 믿음으로 인하여 불순종에 대한 허물을 남겼던 아브라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위해한 점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한번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신앙을 소유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금 정신 차리고 사라가 네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4: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말씀처럼 믿음을 가지고 다시 정신차립니다.

단산한 아내, 90세 나이의 늙은 아내를 믿음으로 가까이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혜의 약속을 굳게 믿지 못한 자는 온전한 축복의 약속을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은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축복의 열매를 빼앗기게 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걸림돌이 생깁니다.

항상 가시가 되고 어려움이 되어 불의의 사건들이 계속해서 내 삶속에 일어납니다.

은혜 받은 자가 고통을 당하게 되고, 자유를 상실하게 되고,

은혜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순간에 완전한 믿음의 포기와 실패가 아닌...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서는 오뚜기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단의 유혹에 쓰러질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다시금 우리의 심령 위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책망과 소망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성령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아브라함의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사라와 하갈입니다.

사라는 자유인이며 약속의 자녀입니다.

약속을 함께 받은 자유인이요 하나님의 딸입니다.

반면에 하갈은 몸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종입니다. 노예입니다.

그리고...

사라와 하갈 두 여인으로부터 분명히 아들 둘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은 사라로부터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믿음을 좇아... 은혜를 좇아 얻은 자식입니다.

그러나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인간적이요 믿음을 떠나서 얻은,

즉 인간의 행위를 좇아 얻은 자식입니다.

그 동기가 전혀 다릅니다.

자식이라고 다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이 두 아들에게 하신 언약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특별히

"두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라와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영원한 약속입니다.

메시야의 약속이요, 영원히 이어지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은 아주 비참합니다.

광야에서 살 것이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실 때에도 두려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결국 아라비아사람이 되어 광야에 거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대표하는 비유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사라는 신령한 예루살렘이다" 위로부터 온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합니다.

26절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요 신령한 예루살렘, 곧 신령한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어느 건물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어느 성지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에 있는 신령한 예루살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교회, 바로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교회에서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태어나지 않습니까?

교회는 참 중요합니다.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성장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훈련 받고 봉사합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신령한 어머니는 바로 사라라고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라가 잉태한 이삭이 약속의 자녀이듯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잉태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살펴 볼 것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바로 사라와 이삭을 통해서만이

유업이 있고 자유함이 있고 자녀로서의 특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상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삭에게만 특권이 있었습니다.

비록 늦게 태어났지만 아브라함의 가정의 당당한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먼저 태어났지만 장자의 특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약속의 자녀만이 참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세상적으로... 인간적인 생각... 육체적인 관계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노예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이기에 자유가 없고 유업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오늘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 자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죄의 종, 죄의 자녀로서 살아온 과거의 온 갖 죄의 습성들을

오늘도 회개하며 자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답게 참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참 자유와 사랑과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자녀된 모습으로 하나님 약속해 주신 특권과 축복들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안에서 참 자유함으로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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