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1

 Holy Life

22-9.01

본문: 갈라디아서 6:6

 

제목: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1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도들 사이에 함께 짐을 져야하는 사랑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 6절 한 절 말씀에서는 좀 더 깊은 신앙인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성도들끼리의 짐을 지는 모습 뿐 만 아니라...

이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함께 짐을 지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단지 목회자에게 성도들이 대접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그리고 가르침 받는 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쉽게 오늘날로 말하자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어떻게 짐을 지라는 말씀입니까?

1. 먼저 오늘 말씀의 속 뜻을 깊이 묵상해 보면...

겉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 받는 자의 영적인 짐을 져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의 당시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신앙적 문제가 발생하고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누구를 찾아왔겠습니까?

사도들을 찾아와서 기도를 부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돌보아주고 말씀을 증거 했던 교회의 목회자들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바울도 이러한 경험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눈 만 뜨면 기도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입니다.

이 때마다...

사도들은 목회자들은...

자신의 문제처럼 그 기도제목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중보기도 했다는 뜻은 기도부탁한 사람의 영적인 짐을... 마음의 짐을... 삶의 짐을 대신 져 주고 해결 주는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영적의 죄의 짐을, 때로는 마음의 슬픔과 근심을, 때로는 실제적으로 삶의 필요를 위해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사역들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을 때에...

여러분은 누구를 가장 먼저 찾아가게 됩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것이 목회자이건 신앙의 연륜이 많은 사람이건...

나 보다 은혜를 많이 받은 신앙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여러분의 목회자는 여러분을 위해서 영적인 짐을 대신 져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기억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고 두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목회자의 짐을 대신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사도바울은 아마도 조심스럽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사도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너희들을 위해서 이렇게 영적으로 고생을 하면서 짐을 대신 지고 있는데...

너희는 이렇게 하라고 강하게 표현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사도입장에서 지는 영적인 짐에 대한 언급은 뒤로 한 채...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이렇게 부드럽게 완곡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는 사도들은, 목회자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무엇이 부족합니까?

영적인 것은 풍성할지 몰라도...

이 세상 것은 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든 좋은 것을 나누는 것으로 목회자들의 짐을 함께 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오늘은 먼저 한 가지만 은혜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물질적인 것을 나누며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교역자로부터 영적인 말씀을 받게 됩니다.

신령한 양식을 얻습니다.

그런데 교역자를 보통 목사 또는 목자라고 부르지만 가톨릭에서는 신부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는 우리가 번역한 말이며 영어 혹은 다른 말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교역자를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적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나고... 그가 전해준 말씀에 따라서 나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또한 그에게 징계를 받고 칭찬을 받고 격려와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의 마지막 훈계를 들으면서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영적으로 볼 때, 그 역할이 분명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4:1516)"

사도 바울은 바로 진정한 아버지와 같은 심정을 품고 그의 양들을 돌보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3가지 복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첫째는 부모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승을 잘 만나는 것입니다.

교인으로 치면 교역자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교역자를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을, 남자는 아내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스승을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임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교역자는 목자는 세상의 스승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지 세상 지식을 전해주는 스승이 아니라...

내 영생의 문제를 좌우하는 귀한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을 잘 가르침 받아야 내가 진정 천국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나를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내가...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나를 가르치는 자,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돈 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물질의 소득을 어느 정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교인은 교역자에 대해서 물질적 부양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십일조라는 제도를 통해서 레위인들의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와 가르치는 자, 즉 교인과 교역자가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진정한 목자(선한목자)라면 대우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우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고 또한 너무 대우 받으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여러분! 엘에이에 위치한 파사데나라는 곳에 '웨스트민스터 가든'이라고 하는 양로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 양로원은 은퇴한 선교사들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살 수 있도록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양로원이 설립된 유래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쯤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뉴욕의 어느 공원을 지나가다 마침 기침을 하면서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당신은 누구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나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다 돌아온 아무개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집도 가족도 없습니까?"

"! 은퇴하고 나서 이렇게 남은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처럼 버려진 사람들이 당신 말고도 많을 것 아닙니까?"

"내가 알기로는 많은 선교사들이 노년에 이렇게 고생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번 중국인 사업가였습니다.

그가 100만 불을 내놓았습니다.

100년 전의 100만 불이라면 정말 큰 돈입니다.

100만 불이 기금이 되어서 지금의 웨스트민스터 가든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양로원은 아시아에 파견되었던 선교사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 땅에서 번 물질 100만 불을 참으로 좋은 일에 썼습니다.

평생을 선교사로 타국에서 살다가 은퇴해서 돌아왔는데 막상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인 사업가는 그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가르침을 받는 자가 가르치는 자와 함께 좋은 것을 나누는

좋은 예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귀한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동참한 교역자들을 돕고 그들의 짐을 함께 지는 일에 동참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으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고 확장되어 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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